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
올해부터는 한달에 책 두권 이상 읽어보자고 했는데 첫 달부터 실패했다.
앞서서 두권의 책을 읽다 말았는데 한권은 외국인이 바라본 우리나라 역사에 대한 내용이었고 또 한권은 알쓸신잡에서 나온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란 책을 읽다 말았다.
외국인이 바라본 우리나라 역사는 제3자가 보면 많이 객관적으로 역사를 신랄하게 바라보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에 읽기 시작했는데 그 책 내용 중 우리나라 성씨가 적고 정권이양시 비교적 평화롭게 이양되었다는 점과 우리나라가 생각보다 침략을 많이 받지 않은 평화로운 나라라는 주장을 펴고 있었다. 작가는 침략을 소규모 침략은 제외하고라고 전제를 깔아놓고 시작했는데 침략의 정의를 그렇게 보는게 맞는 것인지 의구심이 들었고 성씨가 역사에서 사라지는 빈도가 적다는 논리에도 정말 제대로 조사를 한 것인지 단순 통계적으로 보는게 아닌지에 대한 생각이 들었다. 같은 성씨 안에서도 본관, 파가 나뉘어져 있을텐데 그런 것을 감안하고 확인한 건지 의구심이 들었고 계속 그런 생각을 가지고 보다보니 얻어가는 것 보다 의심만 계속 늘어 그냥 책을 덮었다.
마녀를 심판하는 망치는 첫 단락에 나오는 문구부터 마음에 들었다. 마녀가 마법을 행하기 위해서는 악마의 힘과 마녀 그리고 신의 묵인이 필요하다는 내용부터 호기심을 확 끌었다. 대학생이 되어서도 재미있게 봤었던 "마법소녀 리나"에서도 주인공이 마법을 사용할때면 악마의 힘을 빌어 마법을 했던 것 같았는데 이런 책을 보고 그런 세계관을 만들었는지 궁금하기 도 했다. 그런데, 아직 역량이 부족해 내용이 어렵게 느껴지면서 진도가 잘 안나갔다. 매번 책에서 나오는 문구에 대한 관련 내용을 찾으며 읽기에는 부담스러워 나중에 읽어보기로 했다.
그렇게 두권의 책을 그만 읽고 나서 선택한 책이 죽음의 수용소였다.
책이 크게 두개의 파트로 나뉘어 있다. 첫번째 파트는 지은이가 포로수용소에서 겪은 내용이고 다음 파트는 로고테라피에 관한 내용이었다. 로고테라피는 사전 지식이 전혀 없어서 그런건지 어렵게 느껴졌다.
직장 생활하고 몇 년 지났을 때 여러 부서사람들이 모여 같이 작업을 했었다. 그런데 어떤 친하지 않은 직원분이 쉬는 시간마다 창틀에 앉아 멍하니 창밖을 응시하고 있는 모습이 자주 보였다. 독특한 취미를 가지고 있거나 뭔가 아티스트적인 감성을 가지고 있나 생각만하고 말았는데 그리고 나서 몇 달 후 그 분이 퇴사 하셨다. 한동안 그 분에 대한 기억을 전혀 잊고 있었다가 몇 년이 지난 후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고 깜짝 놀랐던 적이 있었다.
어줍게 짐작컨데 그 분이 그렇게 멍하니 창밖을 쳐다보았던 행동들이 삶의 의욕이 전혀 없어 아무것도 하기 싫은 상태를 무의식중에 나타낸 행동이라고 생각된다.
삶의 목적을 잃어버린 사람들은 최악의 상황이든 아니든 정말 위험한 상태인 것 같다.
그런 의미에서 AI, 무인자동차 등등 경쟁력 있는 분야의 교육이 점점 더 강화되는데 그와 더불어 어떻게 하면 삶의 의미를 찾아가며 살아갈지 고민해보는... 자기 자신한테 철학적인 질문을 던져보고 답을 찾아가는 그런 교육도 오히려 더 많이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을 읽으며 들었던 생각들이다.